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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부처님의 고충
  • 김범식 소설가
  • 등록 2026-01-05 12:15:25
  • 수정 2026-01-05 1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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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부처님의 고충소원성취의 명소 갓바위


 새해를 맞아 갓바위를 찾았다.

 가랑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이다. 수많은 무리의 물안개는 팔공산을 부드럽게 애무하면서 감싸고 있다. 어떤 무리는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이쪽 산봉우리에서 저쪽 산봉우리로 이동하면서 대자연을 어루만지고 있다. 

 모처럼 안개 낀 성긴 가랑비를 뚫고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찾았다. 

 

 벌써 많은 사람이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소원성취를 위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정성으로 기도하고 있다. 세속의 고통을 떨쳐버리려고 백팔배를 하는 중생도 여럿 보인다.

 그들은 불전함에 돈을 넣고, 소원지에 뭔가를 적고, 황금 촛불을 밝히고, 불그스름한 황금빛 기왓장에 이름과 소원을 새기고, 바위에 동전을 박아넣고 정성스럽게 소원을 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사업 번창을 위하여, 승진을 위하여, 자식의 대학 합격과 취업을 위하여 머리를 숙인다.

 

 나는 적지만 불전함에 정성을 넣고 갓바위를 쳐다보았다. 

 갓바위 부처님이 내게 말한다.

 

 “오늘도 많은 중생이 나를 찾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나도 괴롭다. 너무도 많은 중생이 너무도 많은 소원성취를 내게 요구한다. 

 무거운 돌 삿갓을 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생들의 소원이 성취되길 애쓰고 있으나 모두의 소원이 성취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가 사업에 성공하고, 모두가 승진하고, 모두가 시험에 합격하고, 모두의 자식이 취직하고, 모두가 건강하고, 모두의 일이 만사형통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말이야. 모두가 잘살면 잘사는 것이 뭔지 모르고, 모두가 승진하면 말단직원이 해야 할 일은 어느 직원이 하고, 모두가 취직하면 직장의 소중함을 모르고, 모두가 건강하면 아픔이 뭔지 모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도 법도 공무원도, 회사도 경영도 상품도, 병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필요가 없게 될 것 아닌가.

 나도 부처이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중생들아.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 

 그대들의 기도는 가상하지만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소원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미안하다. 중생이여.”

 

 머리를 들어 갓바위 부처님을 자세히 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빌어대는 중생의 소원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빛나던 고귀한 삿갓은 빛바래져 있고 존귀한 몸은 거뭇거뭇한 피부색으로 변해있고 군데군데 부스럼같이 보이는 이끼들이 신성한 몸에 박혀 있다. 

 무거운 삿갓에 짓눌려 힘겹게 앉아 있으나, 곧 드러누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지않아 좌불(坐佛)이 와불(臥佛)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갓바위 어른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도한다. 

 “갓바위 부처님이시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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